그 뒤로 보쿠토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약속했던 월수금에 맞추어 학교의 정문 앞으로 나가보았지만 달이 뜰 때까지도 보쿠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몇 번이나 휴대전화의 액정에 빛을 밝혔지만 보쿠토의 연락처를 눌러볼 수는 없었다. 그 일주일간의 침묵, 아카아시의 즐겁지 않은 휴가가 끝나고 다시 연구실로 복귀한 아카아시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그 ...
아카아시는 보쿠토와 조용히 시선을 마주했다. 보쿠토는 조모에게 매달려 장난치느라 바쁜 와중에도 아카아시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크게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확실히, 뭔가 방법이 없긴 하지만…….’ 그가 나타난다 해서 어쩐단 말인가? 자신을 보고 숨 한번 쉬기도 전에 결혼식 얘기를 하는 조모의 마음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 하지만 ...
“…할머님만 뵙는 것 아니었습니까?” 지난번에는 차가 두 대뿐이었던 보쿠토의 본가 차고에는 이미 네 대나 주차가 되어있었다. 차고에서도 들리는 실내의 소음을 보면 안에 한두 사람이 있는 게 아니다. 조금 당황한 아카아시의 질문에 보쿠토도 놀라서 휴대전화부터 꺼냈다. 누군가에게 급히 메세지를 보내는가 싶더니 곧 답신이 왔다. “뜨헉.” “뭔데요. 뭡니까.” ...
《지난번에 맞춘 옷은요?》 “그건 우리 부모님 만날 때 입었잖아!” 보쿠토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핸들을 움직였다. 그의 얼굴에는 활기찬 웃음이 걸려있었다. 해바라기를 사람으로 빚으면 그의 얼굴을 할 거라고, 그의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얼굴이었다. “새로 맞춰야지!” 《하아…….》 아카아시의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눈에 훤했다. 한...
아카아시는 고개를 젖히고 인공 눈물을 눈에 떨어뜨렸다. 계속 난방이 돌아가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더니 눈이 뻑뻑했다. ‘두 개 남았나…….’ 어깨를 주무른 아카아시는 휴대전화의 액정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한 시 20분이었고 도서관에 사람은 반절 정도 차 있었다. 시험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라 그런 것 같았다. ‘피곤하다…….’ 평소에도 체력 ...
* “자네는 데이트도 참 답게 하네.” “네?” “월수금 딱딱 날짜를 지켜서 만나는 거, 아닌가?” 다섯시 반쯤 되면 연구실은 살짝 어수선해진다. 곧 저녁 식사를 할 때이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실험은 자연히 뒤로 밀리고 남은 시간동안 간단히 할 일을 하게 되느라 여러 가지 소리가 나고, 그 소리가 어느 정도 커졌다 싶으면 딱 여섯시였다. 제각기들 저녁을 ...
“아 이 새끼 보통 진상이 아니네…….” 널부러지듯 쓰러질 뻔한 것을 겨우 세워둔 나미카와를 보고서 보쿠토가 제일 먼저 한 말이었다. 상대가 술 취해 인사불성이라 생각했는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거침이 없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한 번 흘낏 보기는 했으나 별달리 책하는 말은 하지 않고 나미카와를 부축했다. “샴페인도 탄산수 수준이던데 이걸 뭐 얼마나 마...
“이야, 우연이다!” “우연은 개뿔…….” 보쿠토가 이죽거리며 중얼거리는 소리는 다행이 아카아시의 귀에밖에 들리지 않았다. “선배 오시는 줄 몰랐네요.” “나도 야~! 이런 데서 너를 보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깔보는 듯한 표정이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애쓴 기색이 역력했다. 아카아시는 옆의 보쿠토를 흘끗 쳐다보았다. 보쿠토는 만사 관심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여긴 갤러리 아닙니까?” “막내 삼촌이 예술을 좋아해.” “어쩐지…….” 아카아시는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오늘 오전부터 보쿠토에게 끌려다니며 맞춘 스타일이었다. 세미정장에 타이는 없이, 가볍지만 격식은 챙긴 차림새에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으나 설마하니 갤러리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저 집안에서 집 한채 외의 유산에는 관심이...
“그 파티에…….” “파티입니까? 무려?” “아, 아니. 모임. 모임! 모임에.” 보쿠토가 황급히 단어를 수정했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걸 물릴 수는 없었다. 아카아시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괴고 미간에 손을 올렸다.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으나. “그 모임에 우리 막내 삼촌이 오는데.” “대가족이군요.” “막내 삼촌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뛰쳐...
아카아시는 퀭한 얼굴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실험실 사람들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 그만 붙잡혀 학교 정문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먼저 떠나는 실험실 사람들이 그를 흘끗거리는 것이 여기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아카아시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야! 야! 그렇게까지 좌절할 일이야!? 내 얼굴을 보는 게 그렇게까지 절망할 일이냐고!” “하……....
보쿠토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카아시는 그것이 보쿠토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을 때나 짓는 표정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얼굴을 지금 처음 보았다는 것도. “그래? 그럼 재미없는 너희 집으로 돌아가지그래.” “너무 매몰차게 그러지 말지~! 그쪽이 새 약혼자?” “눈 깔아. 신경 꺼. 돌아가.” 등골이 섬뜩할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아카아시는 보...
@rr_mielp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